나는 커피를 포함한 음료류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보다 맛있고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것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중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났을 땐, 굳이 새로운 곳을 찾기 위한 시도는 잠시 접어둔 채 오직 그곳에만 몰두한다. 요즘 그런 나의 마음을 완전하게 사로잡은 곳이 바로 충정로에 위치한 가배나루다.
어제 오후, 근 한달만에 가배나루에 다녀왔다. 한시라도 빨리 읽어야 할 책이 한권 있는데, 집에서는 도통 일의 진척이 없이 게으름만 피우게 되어 점심약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배나루로 향한 것이다. 사실 독서에 대한 목적은 전체 마음의 20%도 채 이르지 못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책을 읽거나 뭔가 업무적인 일을 처리하기에, 가배나루는 너무나 천국같고 황홀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배나루 사장님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신다. 매우 아주많이. 평소에 고양이 사료를 준비해두고 오가는 길냥이들이 배를 굶지 않도록 카페 마당 곳곳에 뿌려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정객으로 오는 고양이들도 3~4마리에 이르렀고, 그 중에서는 저 위에 임금님보다 편안한 자세로 주무시고계신 완전 객식구 고양이마저 생겨났다. 저 녀석은 가배나루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메인 고양이로, 아주 어린 애끼냥때부터 사장님들이 돌봐오셨다고 한다. 직원분들은 얌체(깨끗한 그릇이 아니면 사료도 물도 먹지 않는다.) 사장님은 우리 아들 그리고 나는 구준표(ㅋㅋ)라고 부른다.
저 녀석은 주변 길냥이들 중 가장 사람을 잘따르는 무릎냥스러운 아이로, 주변에 누가 있건없건 저렇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먹이에 까탈을 떨고, 카페가 제 집 안방인양 드나든다. 아기 고양이 시절에는 부르지 않아도 무릎위로 올라와 아양도 떨고 했었는데, 커가면서 주변 세력의 모함(?)을 받아 상처도 입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사람들과는 조금 곁을 두는 품성으로 변했다고 한다. 머리와 목덜미 주변을 만져주면 온순하지만, 등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쪽을 만지면 물기도 한다.
책을 좀 보다가 디카를 챙겨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더니 그새 자세를 바꾸었다. 아마 자다가 앞다리가 저렸나보다.ㅋㅋㅋ
얼굴쪽을 좀 찍어보려고 모퉁이를 돌아 자리를 옮기는데 녀석이 깼다.(아마도 마루의 삐걱이는 소리에 반응한듯 하다.) 잠을 깨기위해 기지개를 쭉 펴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어느새 그 자세로 다시 잠들었다. 진정 고양이계의 구준표다. ㅋㅋㅋ
세상에 어느 길냥이가 저렇게 오동통하며, 털에는 윤기가 흐를 수 있을까. 분명 말하지만 새끼를 가진건 아니다. 저 녀석은 사장님의 양아들이다.ㅋㅋㅋ
정말 잘 잔다. 주위에서 사람이 지나건말건, 누가 자기 자는 모습을 그리건(내가 사진찍던 자리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시던 여성분) 혹은 도촬을 하건 미동조차 않는다.
오랜만에 와서일까 못보던 길냥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두달전에는 등에 검은색과 노란 점박 무늬가 있는 손바닥만한 아기 고양이를 봤었는데, 어제 그 아이는 볼 수 없었다. 저녀석은 몸길이 20cm 정도의 청소년 냥이였는데, 아직 가배나루에 익숙하지 않은지 먹이를 먹으면서도 연신 주변을 경계하고 움찔거렸다.
위의 녀석이 사라지자 그보다 더 작은 아기고양이가 뒤따라 나타났다. 몸은 안쓰러울만치 비쩍 말라서 가죽 위로 갈비뼈가 보일 정도였고, 위의 녀석보다도 경계심이 많아 정신없이 먹이를 먹으면서도 사람의 발소리나 인기척만 보이면 매우 화들짝 놀라 숨거나 움츠러들기 일쑤였다.
이녀석은 구준표냥이정도 크기가 되는 또 다른 성묘다. 아마 요 위의 아기고양이 부모인듯, 아기가 밥을 먹을때까지 저렇게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 녀석도 경계심은 상당했다.
이 사진은 두어달쯤 전에 갔을 때 운 좋게 찍은 냥이들 물 마시는 사진이다. 저렇게 큰 물독(저건 아마 빗물일텐데, 말려도 기어코 다시온다.)위로 가볍게 뛰어올라, 저런 묘한자세로 물을 마신다. 두번째 사진 속 노란 고양이의 애칭은 ‘깡패’로 인근 고양이들의 우두머리격인듯 하다. 구준표 고양이보다는 조금 사람을 경계하지만, 그래도 가배나루에 오래 드나든 경력답게 단골들이나 사장님네들 손길은 거부하지 않는다. 깡패라는 이름이 지어진것은 구준표냥이 먹이를 먹고 있는데 앞다리를 들어 뒤통수를 사납게 후려친 뒤, 자기가 밥그릇을 차지한 장면이 목격된 날 이었다고 한다.ㅎ
이녀석은 가배나루의 원조 마스코트 고양이 나루.
가배나루 사장님들이 직접 운영하시는 싸이월드 블로그(http://www.cyworld.com/coffeenaroo)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아아 저것이 정녕 고양이란말인가. 아무도 없는 밤이면 등 뒤에 달린 가죽지퍼를 열고 사람이 튀어나와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것만 같다.
어제 찍어온 가배나루 1층의 내부 모습. 내가 가배나루를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다.(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실내- 벽면과 내부 곳곳에 사장님들이 찍은 각종 사진들이 걸려있다. 이따금씩 소규모 전시회도 이루어진다.) 가배나루는 전체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주문받는 계산대와 주방 그리고 커피와 차를 드립하는 작업대, 컴퓨터와 금연석이 구비되어 있다. 바로 위의 사진 우측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작은 간이테라스와 수십여권의 책이 꽂혀있는 책장 그리고 테이블 몇개가 구비되어 있다. 흡연은 2층과 1층 마당에서만 가능하다.
위에 냥이들이 물마시는 사진을 찍을 당시 함께 디카에 담아온 실내 계단과 바깥 마당샷.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이 우리가 초등학생 시절에 앉았을 의자들에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이 가배나루만의 매력 중 하나이다. 가배나루에는 저렇게 예쁜 의자들이 수십개 구비되어 있는데, 같은 그림은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모두가 가배나루의 인테리어에 도움을 주신 한 여성분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내가 가배나루를 사랑하는 세번째 이유. 너무나 착한 가격, 너무나 착한 메뉴들. 한달만에 다시 찾은 가배나루에는 이전에 없던 아이스용 유리잔이 생겼고(메뉴판 아래 거치대 참조) 자두주스와 코스타리카 드립커피가 추가되었다. (아쉽게도 내가 사랑하던 초코케익은 단종됐다고 한다ㅠㅠ) 가배나루의 차는 좌측에서 두번째 라인에 있는 드립커피처럼 사장님께서 직접 내리는 핸드드립 방식으로 우려지며, 그 향 또한 일품이다. 생과일주스도 아마 국내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순수한(가격대비 과일함유가 가장 높은) 메뉴일 것이다. 나는 어제 자두주스를 택했는데, 이 주스에 들어간 자두는 사장님 고향에서 직접 재배한 자두라고 얘기해주셨다.
내가 가배나루를 사랑하는 결정적인 이유(ㅋㅋ) 가배나루는 혼자가도 결코 뻘쭘함이 없다. 아침에 가서 저녁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도 그 누구하나 눈치주지 않는다. 게다가 음료는 무제한 리필. 사장님들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신다. 보통 무료리필이 가능한 카페들은 리필 메뉴를 아메리카노나 오늘의커피 정도로 한정짓는데, 가배나루에선 사장님들이 먼저 리필을 권하시고 새로운 메뉴들을 추천해 주신다. 어제도 역시 내가 카푸치노 매니아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주시곤 먼저 말도 꺼내기전에 카푸치노로 해드릴까요? 라고 물어주셨다. 가배나루에선 진짜 실크스팀이 얹어진 카푸치노를 맛볼 수 있다. 누군가, 우유 거품맛이 뭐냐고 묻거든 난 가배나루에서 일단 카푸치노를 맛보라고 대답한다!
가배나루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은 친절한 사장님과 직원분들에서 뿜어져 나온다. 손님이 2층에서 구비된 책을 보다가 뒷 내용이 궁금하거든 사장님들은 아무 조건없이 빌려주신다. 마감 시간인 11시가 넘어도 일어날 기색이 없으면 같이 수다를 떨면서 밤샐 각오로 합석도 하신다. 가끔 직원분들과 사장님들끼리 담화를 나누다 크게 빵 터지는 웃음이 담을 넘어 옆 건물까지 들릴때도 있다. 언제나 행복하고 단란한 곳, 그곳이 가배나루다.
가배나루에 다녀올때면, 온몸에 만족감과 편안함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뭔가 유익하고도 휴식까지 제대로 갖춘 휴일을 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터나 학교로 돌아가는 월요병없는 월요일의 느낌이랄까. 나는 아마도 당분간은 이 가배나루를 떠나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가배나루, 충정로역 2번출구 충정타워 뒤쪽 위치
02) 312-0616, 일요일 휴무
'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물시장,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을 다녀오다~! (0) | 2009/09/22 |
|---|---|
| [서대문구/맛집] 명지대 앞 맛집 샌드위치 & 카페 뜰에서 (4) | 2009/09/21 |
| 대륙의 음식을 맛보다. 과연 그 느낌은? (4) | 2009/08/27 |
| 달콤하고 찌인~한 커피가 한 잔 땡기는 날? 부암동 <클럽 에스프레소> (0) | 2009/08/20 |
| 홍대여신 요조 팬들의 성지, 홍대 멋집 세컨플로어에 다녀오다~♪ (0) | 2009/08/12 |
| 길고양이들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카페, 충정로 가배나루 ♡ (14) | 2009/08/09 |




